이번 달에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프리즈(Frieze)와 키아프(KIAF). 비록 입장권 가격은 잔인했지만, 그렇다고 안 가자니 후회할 것 같아 방문했습니다. 전시규모나 작가의 네임벨류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아트페어 중 역대급이라 할 정도로 호화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진귀한 작품들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 입장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한국민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드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그중에 일부분의 생각을 콜렉터님들과 나누고자 프리즈 특집 뉴스레터로 준비했습니다.
이왕 매 맞을 거면 빨리 맞는 게 좋다.
혹자는 이렇게 평합니다. <프리즈 개최로 우리나라가 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의견을 가지신 분들이 주로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이번 프리즈는 외국작가와 갤러리들의 한국 진출과 판매 통로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하지만 우리 작가나 갤러리들은 얻은 게 크지 않고 판을 깔아준 화랑협회만 배 불려주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고 우리나라는 서양의 완전한 미술 속국으로 전락할 것이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십니다. 맞는 말입니다. 숫자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나온 피카소 그림 한 점이 작년 키아프 전채 판매액이랑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는 속국이 아니었나?> 지금 세계 미술시장의 헤게모니는 유럽과 미국이 꽉 잡고 있습니다. 이번 프리즈는 이 단순한 팩트가 눈에 보이는 이벤트로 우리 집 앞마당에서 펼쳐진 것 뿐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우리나라 작가 입장에서) 냉혹한 현실을, 뼈는 아프지만, 지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고 자극을 받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것밖에 안되니까 그냥 이렇게 살자..?
어차피 마주해야 하는 건 빨리 마주하자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현실을 즉시하고 그것을 개선하려 몸부림쳐서 결과로 만들어내는데 특화된 민족이었으니까요. 전 가끔 스스로가 느슨해졌다고 느낄 때 삼성과 현대, 포스코의 과거 이야기들을 읽어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영감도 받고 전율도 받습니다. 물론 미술계와 산업계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우리나라의 근성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나라 예술계는 어떻습니까? 지금 한국영화, 잘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영화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이런 현실, 진짜 꿈도 못 꾸었습니다. 2006년에는 미국의 요구로 스크린쿼터제 규정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영화 관계자들은 그 법 통과하면 우리나라 영화계 싹 다 망한다고 전부 들고일어났습니다. 심지어 배우 최민식 씨는 시위의 일환으로 문화관광부에서 받은 옥화 문화훈장까지 반납했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지요. 당시에 시위하던 분들이 우려하던 시나리오가 2022년 현제 현실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입니다.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오히려 바짝 긴장하면서 발전해온 좋은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횟집에 생선 나르는 트럭 수조에는 물고기 천적을 일부러 몇 마리 풀어둔다고 하죠. 인간사회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미술계를 비교해 볼까요? 모든 조건이 2006년 한국 영화계와 대동소이합니다. 단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2006년에 영화계는 외국 작품의 한국 진출에 결사항전의 배타적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2022년 한국 미술계는 오히려 외국세력에 먼저 손을 뻗고 자리까지 깔아 주었다는 게 차이점이긴 합니다. 어쨌든 한국 미술계는 2006년 한국 영화계가 마주한 현실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미술계에서 BTS와 임윤찬, 손흥민과 김연아, 박찬욱과 봉준호가 나오는 유일한 방법
첫 번째는 기설했다시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서양의 미술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스 로마시대 다 잘라내고 르네상스 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500년이 넘는 역사입니다. 그 유구한 역사 속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미술시장과 관련 제도, 콜렉터 간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생태계를 그들은 지금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무기력하게 있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두번째는 원기옥입니다. 우린 어쩌면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언컨대 이건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레벨을 높이기 위한 작가들의 피와 땀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야겠죠. 1달에 한 번씩 제가 이렇게 콜렉터분들께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한 일환이기도 합니다. 정부와 기업들의 예술계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장려 정책 또한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한국 대중들의 한국 미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관심과 투자입니다. 한국미술이 글로벌을 떠나서 자국민조차 외면한다면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90년대 2000년대 삼성 현대 주식 사는 마음으로 심적 물질적 투자를 해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술시장에서 한 작가의 위상은 그 작가가 속한 나라의 국력에 많은 부분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제대로 매진하는 실력 있는 작가를 지지하는 것, 이 2가지만 꾸준히 해주셔도 10년 안에 우리나라 작가들 해외에서 무시는 받지 않습니다. 한 콜렉터의 관심이 몇 아티스트를 살리고 한 나라 국민의 관심이 나라의 미술 경쟁력을 살립니다. 이런 사례는 미술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메디치 가문이 없는 르네상스 화가들을 상상할 수도 없죠. 자국민들에게도 외면받아 궁핍의 끝자락에서 좌절하던 인상파 화가들은 미국 출신의 콜렉터들이라는 뜻밖의 지원군 덕분에 계속 붓을 쥘 수 있었던 것이었죠. 여러분 한 분 한분이 이 시대의 이건희이자 구겐하임이고 테오 반 고흐입니다. 이 얘기를 하고 싶어 다소 장황하게 끄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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